■ 배경
□ 해방 이후
▶ 1945.8 광복 이후
남북에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하며 남북 간 왕래와 우편 교류가
제한됨.
▶ 1948 이후
남북에 각각 별도의 정부가 세워졌고, 고향이나 가족이 있는 남이나
북으로 갈 수 없는 이들이 생겨났음.
- 남북에 각각
정부가 수립되자 북쪽의 자본가와 지주, 종교인 등은 탄압을 피해
남쪽으로, 남쪽의 공산주의자들은 북쪽으로 이동함.
□ 6.25 전쟁
▶ 1950.6.22 남북
간의 우편물 교환이 완전히 중단된 가운데,
▶ 1950.6.25
한국전쟁으로 수많은
이산가족이 생겨났고,
▶ 1953.7
휴전 이후에도 남북의 대립 속에서 월북·월남자, 납북자, 미송환 포로 등
새로운 이산가족이 계속 생겨났음.
■ 남북 이산가족 만남
□ 70년대 남북적십자회담
▶ 1971.8 남한의
대한적십자사가 북측에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을 제안했고,
▶ 1972
이를 계기로
7.4 남북공동성명이
발표되었으며,
▶ 1972.8~1973.7 이후 7차례의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
열렸음.
▶ 1972
그러나 남한의
유신헌법 제정과 북한의
사회주의헌법 제정, 냉전 구도 속 긴장 재확산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며
지지부진해짐.
▶ 1977
결국 8차 본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접촉을 끝으로 남북 간 대화는
중단됨.
- 1983
KBS 특별 생방송 ‘이산가족을 찾습니다’가 방영되어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재회함.
□ 80년대 남북 이산가족 첫 상봉
▶ 1984 남한의 홍수
피해에 대해 북측이 수해 물자를 제공하며 남북 대화가 재개되었고,
▶ 1985.5~12
8~10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이어짐.
▶ 1985.9 이 기간에 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이 처음으로 교환되며
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루어졌음.
▶ 1986
하지만 남북 관계가 다시 악화되면서 2차 이산가족 상봉 논의는 결국
무산되고, 이후 민간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만남이 이뤄짐.
□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
▶ 1998 김대중
정부는 제3국을 통한 이산가족 교류 지원과 금강산 관광을 통해 남북
교류 활성화 기반을 마련했음.
▶ 2000 ‘6.15 남북공동선언’ 이후 본격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이
재개되었지만,
▶ 2001 4차
이산가족 상봉은 미국 9.11 테러 이후 북측의 일방적인 연기로
무산됨.
▶ 2002
금강산에서의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교류는 점차 정례화되고 제도적인
틀을 갖추게 되었으며,
▶ 2007
남북정상회담에서는 상봉 확대에 대한 합의도 이루어졌음.
▶ 2008
그러나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북한의 군사 도발이 이어지면서 이산가족
교류가 중단됨.
▶ ~2020
이후 이산가족 교류는 간헐적·제한적 형태로만 진행됨.
■ 제한된 상봉
- 전체 등록자 수보다 상봉자는 매우 적었고,
신청조차 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이들도 많아 실질적인 교류 성과는
제한적이었음.
- 특히 이산가족 1세대 대부분이 고령자이기 때문에, 남북 이산가족
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시급하고 절박한 인도적 과제로
남음.